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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9】京剧 图虫 内容 800.jpg

[사진 출처: tuchong.com]

경극은 탄생 후부터 여러 이름으로 불려왔다. 이를테면 난탄(乱弹), 황조(簧调), 경황(京簧), 경이황(京二簧), 피황(皮簧), 이황(二簧), 대희(大戏), 평극(平剧), 구극(旧剧), 국극(国剧), 경희(京戏), 경극(京剧) 등이 있다.

청나라 건륭(乾隆) 55년(1790년), 강남 지방에서 소문난 휘반(徽班, 일종의 연극 단체)인 '삼경반(三京班)'이 청나라 고종(건륭제)의 팔순 '만수(万寿)' 축하공연을 위해 상경했다. 휘반은 휘조(徽调) 또는 휘희(徽戏) 공연을 하는 극단으로 청초 남방 지역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1828년 이후부터 한희(汉戏) 배우들이 잇따라 베이징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한희는 초조(楚调)라고 불리다가 현재는 한극(汉剧)이라고 불린다. 한희는 서피(西皮)와 이황(二黄) 두 곡조를 위주로 하고 특히 서피(西皮)를 위주로 하며 이는 후베이(湖北)에서 유행하는 지방극이다. 휘극과 한극 이 두 창극은 곡조와 공연 방면에서 일종의 파생관계에 있기 때문에, 한희 배우들은 베이징에 진출할 때 대부분 휘반과 합작하여 공연하였다. 일부 배우, 이를테면 여삼승(余三胜)은 휘반의 주연 배우가 되었다.

휘극은 대부분 이황조(二黄调), 고발자(高拨子), 취강(吹腔), 사평조(四平调)이고 간혹 서피조(西皮调), 곤강(昆腔)과 익강(弋腔)으로 공연할 때도 있다. 한극 배우는 서피조와 이황조로 공연했다. 휘, 한 두 극단의 합작, 혹은 두 창극의 융합은 한동안 흡수의 기간을 거쳤으며 거기에 경음(京音)의 요소가 추가되고 또 곤곡(昆曲), 익강, 진강(秦腔)에서 끊임없이 영향을 받으면서 마침내 새로운 극종인 경극이 탄생한 것이다.

1세대 경극 배우가 전문화되어 인정받은 것은 약 1840년 쯤이다. 경극의 형성은 약 150년의 세월을 거쳤다.

원문 출처: 서우두즈촹